로레아노 비산 에타메 메이에르 줄여서 '로렌'이라고 불리는 이 선수는 1977년 1월 19일 카메룬에 크리비에서 태어났습니다. 해양관광 도시로 유명한 이곳은 주변에 바다가 있어 로렌은 해변에서 축구를 하면서 자라기 시작했는데요. 아스날에서 무패우승의 멤버이기도 했으며 카메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로렌'
로렌은 어린 나이에 스페인의 CD 우트레라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미드필더에서 줄곧 활약하던 그는 1995년 CD 우트레라에서 프로 무대 데뷔를 하게 되는데,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유연함과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주전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음시즌 세비야 FC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세비야에서도 그의 활약은 꾸준했었고 1997년 레반테 UD로 이적을 해서 스페인 특유의 중원 장악력과 기술 등을 탑재했고 1998년에 RCD 마요르카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날이 갈수록 무섭게 성장함과 동시에 많은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마요르카 시절 중원에서의 활약이 돋보였고, 스페인 리그에서는 어린 나이에 144경기나 뛸 만큼 경험도 많이 쌓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아스날이 미드필더 보강을 위해 로렌을 선택하여 2000년 아스날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 당시 로렌은 963만 파운드의 거액으로 이적을 했는데, 당시 베르캄프가 1000만 파운 드였단 걸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이적료였습니다. 입단한 자신의 본래 포지션인 미드필더에서 경기를 출전했지만 2001-2002 시즌에 당시 주전 라이트백이었던 리 딕슨의 기량저하와 이를 대비해 미리 영입을 했던 올레그 루즈니가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벵거 감독은 로렌을 라이트백으로 기용하게 됩니다. 로렌은 첫 시즌 33경기를 출전하였고 두 번째 시즌부터는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을 하면서 대단한 체력을 보여줍니다 이 당시 아스날은 후보 선수가 없었는데 2004-2005 시즌 엠마누엘 에부에를 로렌의 후보선수로 영입을 했는데, 챔피언스리그에서 에부에가 월드클래스 호비뉴를 대인수비하면서 에부에의 몸상태가 올라감에 따라 로렌은 주전에서 점점 밀려나게 됐습니다. 결국에는 주전경쟁에서 완전하게 밀려났고 2007년 포츠머스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나이가 전성기의 끝자락에 접어들었지만 아스날 시절 무리한 경기소화로 인해 몸상태가 떨어졌고 2010년 코르도바 CF로 이적을 하게 되었고, 같은 해 은퇴를 하게 됩니다.
2. 미드필더에서 수비수로
로렌은 아스날에서 포지션을 변환하게 됐는데 이 선택은 그의 축구 인생을 바꿔놓는 전환점이 됩니다. 스페인에서 아스날 초창기까지 줄곧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아스날의 주전 수비수인 리 딕슨의 노쇠화와 올렉 루즈니의 적응 문제로 인해 대체자로 급하게 오른쪽 풀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속도면에서 타고나지 않은 선수입니다. 느리지도 않았지만 또 빠르지도 않은 선수였고, 전문적인 수비수 출신이 아니고 미드필더 출신이기 때문에 수비 능력도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포지션 변화에 아스날 팬들은 의아해했습니다. 리그 중위권이나 하위권도 아닌 상위권 중에서도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었는데, 오른쪽 풀백자리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심지어 주 포지션이 아닌 미드필더 출신이 본다? 이러한 문제는 당시에 많은 논란이 됐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논란은 얼마 가지 않아 해소 됐습니다. 그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온 첫 경기에서부터 굉장한 활약을 했는데, 상황에 맞는 오버래핑 능력과 예측력 있는 수비를 펼치며 팀에 활력을 넣는 등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또 주변 선수들과의 팀 플레이가 가장 돋보였는데, 미드필더 시절 스페인 리그에서 배운 패스 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 그리고 시야 등 이러한 기술들은 그에게는 굉장한 자양분이 되었고 신기하게도 포지션을 바꾸면서 그 잠재력이 더 빛을 발한 선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드필더 출신답게 슈팅을 잘 차는 선수였습니다. 오버래핑을 나가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는 장면도 많이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로렌의 가장 큰 장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입니다. 무패우승 당시 주전선수 11명 중에서 가장 낮은 클래스였습니다. 하지만 체력적인 면은 거의 최상위일 정도로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굉장한 능력을 보여줬는데, 그럼에도 부상을 가장 당하지 않던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실제로 벵거 감독은 만약 로렌이 장기부상을 당했더라면 팀은 무패우승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꾸준히 부상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팀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언급이 안 되는 비운의 선수이기도 합니다. 확실한 건 그가 있었기에 팀이 무패우승을 하고, 더 나아가 완벽한 팀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3. 카메룬의 전성기
로렌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국, 일본 월드컵에도 차출되는 등 일찌감치 국가대표의 주전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이 당시 카메룬은 아프리카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는데, 카메룬의 전성기, 황금세대라고 불릴 만큼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아프리카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시기였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팀이었냐면, 월드컵 4강 후보로 들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말 그대로 카메룬 돌풍이었는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아프리카 축구팀이 2 연속 올림픽 우승을 거머쥐는 사상 최초의 사건을 일으켰고,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서도 2000년, 2002년 연속으로 우승을 하게 되면서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MVP는 로렌이 수상하게 될 정도로 팀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골키퍼였던 카를로스 카메니, 바르셀로나 B에서 뛰고 있었던 재능 패트릭 음보마, 그리고 아프리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알려진 사무엘 에투 등 로렌은 이런 선수들과 카메룬의 전성기를 이끌며 국제적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10년 가깝게 국가대표로 뛰었는데 2000년 초반에만 우승컵을 3번 들어 올리고 개인상 까지 수상하는 등 대단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이렇듯 아프리카에서 독보적으로 강팀이었고 그 당시만 해도 나이지리아는 은완코 카누를 필두로 양대 산맥으로 불렸지만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나이지리아를 꺾으면서 아프리카 최고의 팀 자리에 등극하게 됩니다. 이런 결과들로만 보면 그가 경기장 위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소속팀인 아스날에서도 포지션을 변경했는데도 무패우승을 기록하면서 그가 얼마나 팀에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그는 저평가되거나 언급이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그가 기록한 업적과 팀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