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피레스' 원조 미들라이커, 불운의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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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피레스' 원조 미들라이커, 불운의 국가대표

by rosi7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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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로베르 피레스는 1973년 10월 29일 프랑스 랭스에서 태어났습니다. 187cm의 키에 80kg의 몸무게로 윙어 치고는 큰 키와 체격으로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선수 시절 그는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스트라이커만큼 만을 골을 넣어서 미들라이커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악재가 겹치면서 국가대표팀에서는 운이 안 좋았던 선수였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피레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로베르 피레스'

피레스는 1989년 스타드 드 랭스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면서 경험을 쌓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재능을 갖고 있어서 빠른 시간에 두각을 드러냈고 1992년 FC 메츠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활약을 하면서 다음 해인 1993년 프로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는 간간히 출전하는 유망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는데, 1995-1996 시즌부터 주전을 차지하면서 팀의 중심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즌에 리그컵인 쿠프 데 라 리그의 우승을 차지하게 됐고 1997-1998 시즌은 메츠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굉장히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곳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8년 프랑스 명문팀인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첫 시즌 그는 뛰어난 기술에 비해서 부족한 정신력 그리고 신체능력이 약 첩으로 꼽혔고 선발 기회를 잘 잡지 못하는 등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지만 2000유로 결승전에서 굉장한 활약으로 결승골에 도움을 하는 등 유럽을 포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당시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 등 명문팀들의 이적제의가 많았었는데 그는 아스날로 합류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해외로 진출하게 됩니다. 이적 초반에는 피레스는 약점인 신체조건을 보완하지 못하는 등 적응하지 못하여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벵거 감독의 지도 아래 신체조건을 키우고 점차 적응하기 시작하더니 2001-2002 시즌 리그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후에는 전성기를 맞이해 무패우승을 달성하는 등 소속팀 레전드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아스날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뒤로하고 그는 2006년 스페인 비야레알 CF로 이적을 해서 후안 리켈메의 대체자로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맹활약을 하면서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2010년 잉글랜드의 아스톤 빌라, 인도의 FC 고아 등을 거치며 2015년에 은퇴하게 됩니다.

 

2. 원조 미들라이커

피레스는 선수시절 미드필더 측면이나 중앙을 오가며 활약했던 선수입니다. 그는 미드필더에서 뛰면서도 스트라이커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그래서 미들라이커라고 불렸습니다. 미들라이커란 미드필더에서 뛰는 선수인 미드필더가 스트라이커처럼 득점에 영향을 주는 선수를 일컫는 말인데 미드필더 + 스트라이커(Midfielder + Striker)의 합성어입니다. 그는 2000년대 아스날에서 뛰면서 리그 최고의 윙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8경기에 출전하면서 62 득점을 했는데, 그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었고 매우 지능적인 선수였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프랭크 램파드가 있기 전 원조 미들라이커로 당대 최고 수준의 드리블러 중 한 명이었습니다. 아스날도 훗날에는 알렉산드르 흘렙, 사미르 나스리, 토마시 로시츠키 등이 피레스의 뒤를 이어 활약을 했지만 그 누구도 피레스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전성기 시절 수준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윙어지만 필드 전 지역을 누비면서 경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수준급의 감아 차기는 그의 최고 장기 중 하나였습니다. 이 장기로 프리미어리그에서 많은 골을 기록했으며 미들라이커라는 별명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선수시절 앙리와의 연계플레이가 상당히 좋았는데 특히 무패우승 시절인 2003-2004 시즌에는 두 명이 합쳐서 모든 대회에서 57 득점을 하는 등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특히 강팀을 상대로 강했고, 라이벌 매치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스날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선수시절 보여준 이런 모습들은 정말 대단했었고 윙에서의 움직임과 역할은 교과서라고 불리면서 많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3. 불운의 국가대표

피레스는 선수시절 소속팀에서는 전설적인 활약을 할 정도로 굉장했던 선수입니다. 그가 갖고 있는 능력은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잉글랜드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었으며, 충분히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의 경기를 매 경기 보여주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운의 국가대표 선수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데, 첫 번째는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플레이메이커라고 불리는 지네진 지단과 포지션이 겹치는 부분이었습니다. 지단은 그 당시 프랑스의 윙에서도 뛰고 중앙에서도 뛰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줬습니다. 심지어 비슷한 신체조건에 볼을 다루는 능력도 최고 수준인 것도 비슷했고, 공격 지역에서의 영향력도 비슷한 선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지단은 이런 피레스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선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단의 교체선수 격으로 많은 출전을 하면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월드컵에서 매 경기 교체선수로 활약했고 많은 시간을 받지는 못했지만, 교체출전 이후에는 괜찮은 활약을 하면서 프랑스가 월드컵을 우승하는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이후 유로 2000이라는 국제적인 대회에서도 교체선수로 출전해서 준수한 활약을 했는데, 그는 이 경기에서 교체 출전 후 트레제게의 결승골에 도움을 하면서 주가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전성기에 들어서게 되는데 지단이 없었던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나 주전으로 활약을 했고 득점왕과 골든볼을 차지하는 등 지단을 대체하면서 몸상태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한국, 일본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월드컵 명단에 오를 수 없었고 지단마저 부상으로 프랑스는 조기 탈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여 팀의 우승을 이끄는데 공헌하는 등 소속팀 무패우승과 시기가 맞물린 이때가 가장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프랑스 국가대표 감독인 레몽 도메네크가 어이없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국가대표로 뽑지 않으면서 승선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희대의 천대 지네딘 지단과 한창 전성기 시절 감독과의 말도 안 되는 불화로 불운의 국가대표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에서 79경기 14골로 좋은 활약은 하지 못했던 굉장히 아쉬운 선수 중에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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