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포돌스키' 9번의 저주에 걸린 애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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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포돌스키' 9번의 저주에 걸린 애국자

by rosi7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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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루카스 포돌스키는 1985년 6월 4일 폴란드 글리비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그가 두 살이었을 때 독일로 이주하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베르그하임 시에 정착했습니다. 포돌스키는 만 6세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훗날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는데, 특히 국가대표에서는 애국자라고 불릴 만큼 아주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9번의 저주에 걸리도 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1. '루카스 포돌스키'

포돌스키는 1991년 아주 어린 나이에 FC 07 베르크하임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여렸을 때부터 뛰어난 활약으로 1995년 10세의 나이에 독일의 강팀 1. FC 쾰른의 유소년 아카데미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준수한 활약을 펼치다가 2003년 성인팀의 부름으로 18세의 나이로 프로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데뷔 시즌인 2003-2004 시즌에 19경기 10골, 2004-2005 시즌에는 30경기 24골이라는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보여주며 다음 시즌에는 32경기 12골로 쾰른의 골잡이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에 쾰른이 부진으로 강등위기에 놓이자 이적을 결심하게 되며 2006년 독일의 명문팀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쾰른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그는 비교적 뮌헨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설상가상 루카 토니와 미로슬라프 클로제라는 거물급 선수들 때문에 후보로 전락하게 됩니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2009년 친정팀인 쾰른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지 27경기 2골이라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음시즌은 32경기 13골 6 도움이라는 라는 굉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에 2011-2012 시즌에는 사생활 문제로 주장직을 박탈당했지만 29경기에 출전해서 18골 8 도움을 기록하며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의 아스날에서의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2012-2013 시즌 데뷔전에서 1골 1 도움, 다음 경기도 1골을 기록하는 등 세 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기록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9번의 징크스가 사라지는 듯 준수한 활약을 보인 시즌이었지만, 다음 시즌에서 큰 부상을 당하며 3개월 동안 재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때문에 경기력이 좋지 않은 포돌스키는 이적설이 돌았지만 그는 곧 팀을 구원하며 12골 4 도움이라는 준수한 활약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계속 보여줘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후 인테르 밀란으로 임대를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5년 갈라타사라이로 이적을 합니다. 이후에 일본의 비셀 고베, 튀르키예의 안탈리아스포르를 거쳐 2021년 폴란드의 구르니크 자브제로 이적하여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9번의 저주

포돌스키도 9번의 저주를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부진을 겪긴 했지만 한때 클럽에서 2자리 수 득점을 매 시즌하고 있었고 국가대표팀에서는 매번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실력적인 면에서는 월드클래스인 그가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FC 쾰른의 강등으로 자유계약으로 영입을 하게 되는데요. 2012-2013 시즌의 9번이었던 박주영이 포돌스키에게 9번을 넘겨주며 팬들은 그의 활약에 저주를 깰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기록을 보자면 데뷔시즌에 10-10을 기록하면서 팀의 주 득점원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2013-2014 시즌 페네르바체와의 챔피언스리그 3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무려 10주라는 기간 동안 결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9번의 저주가 다시 걸릴 것이라는 팬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리그경기에서 교체 멤버로만 활용되며 아스날의 9번의 저주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월콧의 부상 이후 시즌 막판에만 중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0경기 12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보이며 또 저주가 깨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당시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짙은 아스날의 선수 들과 결정력이 뛰어난 포돌스키의 호흡은 팀 공격전술의 다양성을 이끌어냈고, 램지와 월콧의 부상 이후 부진에 빠진 지루가 되살아나며 팀 전체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포돌스키는 2014-2015 시즌에 벤치멤버로 전락하게 되고 저주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미 아스날에서 벤치멤버가 되면서 경기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는 인테르 밀란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3. 애국자

위 글처럼 포돌스키는 클럽에서 기복이 심하거나 운이 안 좋았던 경우가 있었지만, 그는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애국자'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팬들은 "포돌스키는 국가대표에 오면 호날두, 메시 수준이다."라고 말을 할 정도로 엄청난 기록들을 세우게 됩니다. 그는 독일의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2004년 6월 6일 A대표팀에 처음 데뷔했으며, 이후 유로 2004에도 발탁 됐습니다. 그리고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투톱을 맞추면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월드컵에서 3골을 기록하여 득점 공동 2위에 올라서는 등 그 당시 메시, 호날두, 루니 등을 제치고 영플레이어상을 받게 됩니다. 이후 열린 유로 2008에서는 소속팀에서의 부진에도 3골을 넣으며 애국자다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을 앞두고 포돌스키는 18경기 2골로 처참한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이 비난이 무색하게 호주전, 잉글랜드전에서 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을 해주었고 세대교체를 진행하는 독일을 3위에 올리는데 한 몫하여 역시 국가대표팀에서는 대체자가 없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게 됩니다. 또 유로 2012에도 출전하여 클럽에서 부진과는 대비되는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유럽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이라는 명예를 얻게 됩니다. 그 후 2013 5월 에콰도르와의 A매치에서는 9초 만에 골을 넣으며 독일 역대 득점 2위 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아쉽게 부상으로 토너먼트에서 뛰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2016년 유로 2016을 마지막으로 은퇴 발표를 하게 됩니다. 2017년 3월 23일 그의 은퇴경기에서 전매특허 왼발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국가대표 13년 경력의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국가대표 개인 기록을 살펴보자면 2006 월드컵 베스트 영플레이어, UEFA 유로 실버슈와 토너먼트의 팀, 키커 올해의 팀, 독일 이달의 축구선수 4번, 독일 홀해의 골 2번, 독일 이달의 골 14번 등 전무 후무한 활약으로 현재 A매치 130경기 49골로 역대 3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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