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리 사냐는 1983년 2월 4일 프랑스 상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님은 세네갈 출신으로 아프리카 축구선수 특유의 탄력과 단단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축구무대와 국가대표 무대에서 톱클래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활약을 했는데. 오늘은 바카리 사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바카리 사냐'
그는 1998년에 AJ 옥세르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인 축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던 그는 뛰어난 활약으로 2004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를 하게 됩니다. 공격과 수비를 오가면서 대단한 활약을 하던 그는 오른쪽 수비수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07년 900만 유로로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데뷔 시즌 초반부터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단단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팀의 레전드 윙백 '애슐리 콜'의 등번호를 물려받으며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가 하면 데뷔 시즌을 기점으로 2010년대 초반까지 필립 람, 마이콘 등과 더불어 세계 최정상급의 풀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여러모로 밸런스가 잘 잡힌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주전 풀백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의 활약은 꾸준하게 계속됩니다.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시즌 출중한 경기력을 유지하며 FA컵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48경기 중 47경기 선발 1골 5 도움이라는 활약을 했고 시즌 종료 후 2014년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발레타와 로테이션을 돌려 쓰며 출전 시간은 늘리지 못했고 그럼에도 최고의 몸상태를 보여주는 날도 많았는데 사발레타가 부상을 당하게 되며 사냐는 곧바로 EPL최고의 오른쪽 수비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2015-2016 시즌에는 45경기 중 42 경기선발 3 도움이라는 기록으로 활약을 보여줬고 다음 시즌에는 부상과 노쇠화로 몸상태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최하위팀 베네벤토 칼초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앵팍트 드 몽레알로 거처를 옮긴 후 부상으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2. 한때는 톱클래스
사냐는 수비적인 선향의 풀백이지만, 날카로운 크로스를 장착하고 있어서 공격 기여도도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오른쪽 풀백 자리에 존재했을 때는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짧게나마 월드클래스 중에서도 최정상의 위치를 다툴 정도로 톱클래스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날카로운 크로스와 전진능력을 잘하는 풀백치고는 매우 빼어난 수비력을 갖추어서 때때로 센터백들이 전진을 할 때 센터백 위치로 가서 수비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크로스의 질도 부상 이후에는 정확도가 좀 떨어지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스날 시절에는 상당히 공격적인 역할을 맡았는데 오른쪽 윙포워드로 출전하는 시오 월콧과의 호흡이 아주 좋아 위협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줬습니다. 팀의 빌드업 과정에도 참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특히 공중볼을 따내는 능력이 176cm라는 키에 비해서 엄청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냐의 빌드업 능력은 대체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과거에서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사냐 쪽으로 공을 줘서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과거에도 평가가 좋았지만 현대 축구에서 풀백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공격 가담, 빌드업 과정 참여 및 안정적인 수비 등 풀백에게 요구되는 장점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더 고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보통 풀백을 뛰는 선수들은 축구선수 생활이 오래가지 못하는데, 사냐가 30대 중반까지 꾸준하게 몸상태를 유지한 것은 타고난 신체조건과 정신력으로 이 또한 그의 큰 장점이자 그가 톱클래스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이유입니다.
3. 프랑스 풀백의 계보
세네갈계 이민 2세라 유망주 시절 세네갈 국가대표팀에 아버지가 선발을 고려해 달라고 연락을 했었는데 세네갈 국가대표팀은 무관심으로 대응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사냐가 리그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을 때, 세네갈 국가대표팀은 사냐에게 국가대표팀을 권유했지만 그는 프랑스를 선택하게 됩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07년 데뷔하게 되었고 부동의 오른쪽 주전자리를 꿰차며 릴리앙 튀랑, 윌리 사뇰을 거쳐 사나로 이어지는 그 당시의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오른쪽 풀백의 계보는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이후에는 드뷔시나 잘레 같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사냐를 끝으로 그렇다 할 풀백을 찾지 못한 프랑스 대표팀은 지금도 오른쪽에서는 그를 대체할 자원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해서 3경기 모두 선발로 뛰었고 그의 수준에 맞는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었는데, 당시 프랑스가 역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1 무 2패로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됩니다.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로 2016까지 국제적인 대회를 꾸준히 나가며 유로 2016 대회에서는 프랑스의 준우승에 공헌하게 됩니다.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1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65경기를 뛰며 프랑스가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을 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프랑스의 오른쪽 풀백 계보에는 상당한 공백기가 있었는데 릴리앙 튀랑, 윌리 사뇰, 바카리 사냐 이후에 마티유 드뷔시와 크리스토프 잘레는 나이 문제로 기량이 많이 떨어졌었고, 그나마 최근 들어 세바스티앙 코르시아가 성장세를 보이면서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지브릴 시디베와 뱅자맹 파바르가 대성하면서 사냐 이후의 긴 공백기가 채워지면서 프랑스의 오른쪽 수비수 계보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