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역대 최고의 등장,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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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역대 최고의 등장,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

by rosi7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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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박주영은 1985년 7월 10일 대한민국의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182cm의 키에 75kg 체중으로 키가 엄청 큰 편은 아니지만 공중볼을 굉장히 잘 따낼정도로 점프력이 엄청나게 뛰어났던 그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등장과 천재성으로 유명했던 선수입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도 최고라고 불릴 만큼의 공격수로 무결점 스트라이커로도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박주영 선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박주영'

박주영은 대구에 있는 반야월 초등학교에서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서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거쳤는데 이 당시 역대 최고의 유망주로 역사상 전례 없는 활약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는 축구뿐만 아니라 반에서도 공부로 1등을 하던 수재였는데 부모님의 반대에도 그는 축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로 축구를 계속하게 됩니다. 유소년 시절 대회에서 굉장한 활약을 하며 명문대학교인 고려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국가대표팀까지 차출되면서 그의 주가는 점점 올라갔습니다. 2005년 국내 빅클럽, 일본 J리그 등 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있었고 그는 FC 서울로 입단하게 되면서 충격적인 프로 무대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K리그에서의 활약으로 2008년 프랑스의 명문 AS 모나코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등번호는 10번, 에이스의 번호를 받았고 데뷔전부터 1골 1 도움을 기록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모나코는 기복이 심한 팀이었는데 팀이 아무리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줘도 박주영은 언제나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주면서 실질적인 에이스로 급부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고 5골 6 도움을 기록하면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09-2010 시즌에는 초반에 3경기 연속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팀 내 득점 2위를 기록하면서 자리를 점점 잡아갔습니다. 33경기 9골 3 도움으로 점점 몸상태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허벅지 부상과 군대문제로 한국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시즌 35경기 12골로 당시 차범근, 설기현에 이어서 유럽 진출 한국선수 3번째로 10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직까지도 아시아 국적 선수로 프랑스 리그 최다골을 넣은 선수로 기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굉장한 활약 속에 그는 2011년 프리미어리그 아스날로 이적하게 됩니다. 등번호는 9번. 많은 기대 속에 이적했지만 기이하게도 벵거감독이 박주영을 출전시키지 않으면서  4년간 총 7경기 1골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으로 스페인의 셀타 데 비고로 임대를 갔고 몸상태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는 왓포드, 알 샤바브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15년 FC 서울을 거쳐 2022년 울산현대로 이적해 현재까지 플레잉 코치로 선수 겸 코치역할을 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역대 최고의 등장

박주영은 유소년 시절부터 굉장히 유명했던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구고등학교 시절에 브라질로 1년간 유학을 가서 더 성장을 했고 고등학교 3학년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33경기 47 득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4개의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차출이 되어서 2살 월반을 하는 등 대회에서도 상을 쓸어 담으면서 역사상 최고의 등장을 하게 됩니다. 200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는 6 득점을 하면서 환상적인 기록으로 그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FC 서울 프로 데뷔를 하자마자 12골로 득점 2위에 올랐고 K리그 역사상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말도 안 되는 기록들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는 매 경기 엄청난 활약을 했고 20세라는 어린 나이에 득점 2위를 하고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이천수와 MVP 경쟁까지 하는 등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처럼 그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닐 정도로 굉장했던 선수였습니다. 특히 골대 앞에서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엄청난 침착함을 보여줬는데 여유는 물론이고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 침투 등 완벽한 기량을 보여주면서 화려한 등장을 했습니다. 그의 최고 장점 중 하나는 상당한 제공권을 갖고 있으며 182cm라는 큰 키는 아니지만 굉장한 점프력을 이용해 높은 공중볼 경합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가 볼을 다루는 능력을 어렸을 때부터 세계적인 레벨이었으며, 예측력과 판단력이 매우 빨라서 상대 수비수들을 쉽게 벗겨내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역대급 재능을 갖고 프랑스로 가서 성공한 유일한 선수였는데 벵거감독이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출전시키지 않아서 몸상태가 떨어지면서 해외에서 일찍 몰락하게 됩니다. 그가 보여줬던 모습들 때문에 대한민국 팬들은 굉장히 아쉬워했습니다.

 

3.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

박주영은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황선홍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공격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2003년 U-20 월드컵에서 이름을 알렸는데 2살을 월반했음에도 26경기 18 득점을 하면서 대회 내내 감각적인 슈팅과 개인기, 탁월한 골결정력 등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고의 유망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후에는 2004년 AFC U-19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고 조별리그에서만 3경기 3골, 4강에서 1골 1 도움, 결승전 2골을 넣으면서 우승을 하게 됐는데 이 당시 수비수 3~4명을 가볍게 제치고 골을 넣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일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청소년 시절부터 모든 상을 쓸어 담으면서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05년에 처음 성인대표팀에 발탁이 됐고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골을 넣는 등 국가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모든 공중볼 경합에서 이기면서 그의 존재감을 알렸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4 득점을 하면서 맹활약을 하는 등 최고의 공격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문제의 2012 런던 올림픽 아스날에서 경기 출전을 못하고 있어 감각이 떨어졌다는 등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개막 직전 뉴질랜드,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면서 논란을 잠재웠고 본선에서는 골을 기록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경기에서 역대급 골장면이 나와서 동메달을 땄는데, 일본 수비수 3명을 드리블로 전부 제치며 골을 기록하면서 메시 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장면이며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이만한 단독 드리블 골이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1골 1 도움을 기록하며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렇게 국가대표팀에서 68경기를 뛰면서 24골을 기록했고 2014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게 됐는데 많은 대한민국 팬들이 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역대 최고의 공격수라는 수식어에 맞게 국가대표팀을 뛰면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줬고, 소속팀에서의 경기 공백에도 팀의 동메달에 기여하면서 역대 최고의 등장과 함께 역대 최고의 원톱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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