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크 파브레가스는 1987년 5월 4일 스페인 아레니스데마르에서 태어났습니다. 178cm에 76kg으로 보통체격을 갖고 있었는데, 미드필더 지역에서 말도 안 되는 패스와 축구 지능으로 프리미어리그 통산 도움 2위, 도움왕 3회 등 패스능력으로 세계 최정상을 찍었던 천재였습니다. 오늘은 세스크 파브레가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세스크 파브레가스'
파브레가스는 만 8세의 나이에 CD 마타로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곳에서의 엄청난 재능으로 1997년 전 세계 모든 축구 유망주들이 있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경기를 뛰었는데 시즌 30골 이상을 기록했을 정도로 득점능력도 갖춰진 선수였습니다. 2003년에는 벵거 감독의 설득으로 아스날 유소년 아카데미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만 16세 177일이라는 아스날 최연소 프로 무대 출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후에 펼쳐진 울버햄튼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득점을 하면서 최연소 득점 기록도 세우게 됩니다. 이후에 시간이 갈수록 기량을 펼치며 그의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2004-2005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선발로 출전하게 됐는데 주전 미드필더였던 비에이라의 부상으로 32경기 선발 3골 6 도움으로 어린 나이에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다음시즌에는 비에이라가 유벤투스로 완적이 적을 해서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선발 41경기 5골 6 도움을 기록하면서 그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팀의 중심이 됐습니다. 2006-2007년부터는 아스날의 무패우승 주역들이 하나둘씩 이적을 하게 되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파브레가스는 고군분투를 하면서 49경기 선발출전에 4골 13 도움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도움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다음 시즌에는 황금의 4중주 라인을 구성하며 전술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15라운드까지 무패를 달리며 1등으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 역시 리그에서만 17 도움으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계속해서 팀의 주장으로 남으며 아스날의 전설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후에 우승컵이 간절했던 파브레가스는 2011년 바르셀로나로 향하게 되었고 출전 60시간 만에 우승컵을 들었는데, UEFA 슈퍼컵에서 다시 우승컵을 들면서 그의 소원도 이루게 됩니다. 2012-2013 시즌에는 로우라 코치가 대행을 맡게 된 이후 몸상태가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2014년 결국 첼시로 이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첼시에서도 역시 엄청난 모습으로 진가를 발휘했고 이후 AS 모나코, 코모 1907을 끝으로 2023년 은퇴를 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그는 몸상태가 별로 좋지도 않고 평가도 안 좋았던 바르셀로나 시절 모든 시즌 10골 10 도움 이상을 기록하면서 재평가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코모 1907B팀에서 감독직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역사상 최고의 천재
파브레가스는 유소년 시절부터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려질 만큼 굉장한 잠재력을 보여줬던 선수입니다. 그는 엄청난 패스 능력을 갖고 있어 그 패스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스루패스와 센스 있는 원터치 패스, 로빙 스루패스, 드라이빙 패스, 공간창출 패스 등순간적으로 동료의 위치를 확인하고 알맞게 동료 발밑으로 갖다 주는 패스를 보면 경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아스날 시절 왜 이 선수가 팬들에게 사랑받고 열광했는지 그가 가진 능력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패스는 정확도마저 경이롭습니다. 사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패스 퀄리티를 자주 보여줬는데 그가 하던 패스는 바르셀로나 같이 지공전개를 선호하는 팀보다는 아스날 같이 역습, 자유로운 위치의 전술에 더 맞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침투능력도 준수한데 아스날 시절 페널티박스로 침투해 마무리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고 동료 선수를 이용해 패스를 주고받는 움직임도 굉장히 능했습니다. 하지만 스피드가 좀 느렸는데, 첼시시절 노장 존테리와 함께 가장 느렸을 정도로 주력면에서는 굉장히 떨어졌던 선수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10대와 20대 시절에 기대치만큼은 성장하지 못한 선수입니다. 그가 가진 잠재력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인 사비, 이니에스타, 모드리치, 피를로, 램파드, 제라드 같은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 정도의 선수까지로는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월드클래스의 수준까지 도달한 선수로 20대 후반부터 일찍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전 까지는 시즌마다 많은 골과 도움 모두 기록했을 정도로 기대에 비해서 못한 거지 수치상으로는 경이로울 정도로 잘했던 선수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3. 가짜 9번
파브레가스 하면 '가짜 9번'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즉 펄스나인이라고 하는 전술의 일부분입니다. 그는 가짜 9번 역할을 국가대표팀에서 수행을 했는데 그는 2003년 U-17 월드 챔피언십에서 스페인을 준우승으로 이끌고 골든볼, 골든슈까지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성인 대표팀으로 들어가서 세르히오 라모스의 최연소 데뷔기록을 갈아치웠고 19살의 나이에 월드컵 모든 경기를 출전할 정도로 인정받던 유망주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는 결승전 이니에스타의 극장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선수였습니다. 이후에 유로 2012에서 그는 4-3-3 포메이션에서 펄스나인으로 낙점이 되는데, 당시 스페인은 다비드 비야의 부상과 페르난도 토레스의 부진으로 델 보스케 감독은 파브레가스를 제로톱으로 기용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에 보답하듯 그는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에서 동점골, 포르투갈과의 4강전에서 승부차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넣으며 결승으로 팀을 이끌었고 결승전에서는 다비드 실바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완승을 이끌며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는 파브레가스가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가짜 9번 역할을 소화해 내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당시에 그는 이니에스타, 사비 알론소, 부스케츠 그리고 사비까지 미드필더 라인에는 낄 자리가 전혀 없었고 가끔 출전해도 그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펄스나인 롤을 소화해 내면서 당시에는 파격적인 전술로 팀이 국제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25여 개 정도의 개인수상을 기록했으며 특히 가짜 9번의 전술을 소화했을 시기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몸상태가 최고조에 올랐던 시기였습니다. 이처럼 역사에 남을만한 말도 안 되는 패스능력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 줬던 파브레가스는 비교적 전성기에서 일찍 내려오면서 팬들의 기대보다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건 그가 가졌던 잠재력은 역대 최고급이었으며 그 기대에 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지 기록만 봐도 굉장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그를 우상으로 하는 젊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