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캠벨은 1974년 9월 18일 잉글랜드 그레이터런던 런던시 뉴엄 프레스토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메이카의 피가 흘렀던 그는 키 189cm 몸무게 100kg으로 당시 신체조건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 수준으로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역대 가장 충격적인 이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선수입니다. 오늘은 솔 캠벨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솔 캠벨'
캠벨은 1988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축구를 시작합니다. 그는 이곳에서의 활약과 그가 갖고 있는 잠재력 등으로 많은 구단들이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1989년 토트넘 훗스퍼 유소년 아카데미를 선택하면서 그의 능력을 성장시키게 됐는데, 기량이 점점 올라오더니 1992년 토트넘에서 프로 무대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는 토트넘에서 주전을 차지하게 되면서 팬들과 교감을 많이 했고 팀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선수였습니다. 토트넘에서 9년간 뛰면서 유소년 아카데미부터 시작해서 성인팀까지 총 11년 동안 팀에 헌신을 한 선수였습니다. 1996년부터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까지 차출되면서 주전을 맡을 정도로 기량이 엄청난 수준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토트넘의 전설적인 선수로 이름을 남길 찰나에 계약 만료 시점에서 아스날,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등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근데 충격적 이게도 캠벨은 토트넘과 가장 악연이라고 알려진 라이벌 구단 아스날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이적은 토트넘 팬들에게도 관계자들에게도 역대급으로 충격적인 이적으로 기록됩니다. 그렇게 2001년 아스날로 이적을 해서 캠밸은 맹활약을 하면서 무패 우승의 주역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스날에서는 전설적인 선수로 이름이 기록되었으며 아직 까지도 토트넘 팬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는 아스날에서 5년 동안 활약한 후 2006년에 포츠머스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2009년 노츠 카운티로 이적을 하는데 데뷔전에서 4초 만에 실수를 하게 되어 팀의 패배에 기여했고 그 직후 계약을 해지당하게 됩니다. 2010년 겨울에 다시 아스날로 복귀해서 리그 11경기를 뛰었고 같은 해 여름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7경기를 뛰고 시즌을 마치게 됩니다. 2011년에 계약이 만료되었고, 2012년 은퇴를 선언해서 감독으로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하나 싶었지만 팀이 2020년을 끝으로 4부 리그로 강등하고 난 뒤에는 감독 생활을 하지 않고 간간히 방송에서 출연하면서 조언을 하거나 가끔 해설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2. 역대급 신체능력
캠벨은 현역시절 190cm에 달하는 키와 100kg의 거대한 몸무게로 거대한 체격과 근육질 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몸싸움이 거칠다고 정평이 나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신체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선수로 역대급 신체능력을 갖고 있던 선수였습니다. 캠벨을 몸싸움과 신체조건으로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토트넘 시절과 아스날 시절 든든한 수비수로서 팬들에게 사랑을 받던 선수였습니다. 특히 거대한 체격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스피드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아스날 시절 100m를 10초 중반대에 주파하는 축구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스피드 스타 티에리 앙리와 스피드가 같았을 정도로 발이 빨랐습니다. 이는 리오 퍼디난드, 버질 반 다이크와 비교해도 훨씬 빠른 수준이었습니다. 일단 속력과 이러한 신체조건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수비 진영에서 공을 뺐고 달리기를 해서 앞으로 공을 전달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으며 이뿐만 아니라 순발력, 점프력 모든 운동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보니 아스날 시절에는 콜로 투레와 완벽한 센터백 라인을 구성하면서 철옹성 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나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상대 진영 아군 진영 할 것 없이 공중볼을 압도적으로 따내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면서 공중볼에서도 월등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유소년 시절에는 헤딩은 잘할지라도 상대 진영에서의 위치선정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경험이 쌓여가면서 이러한 단점들도 보완이 돼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헤딩 골을 넣으면서 이러한 오명들도 씻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대표팀, 소속팀에서도 주장을 맡은 경력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리더십, 소비 조율 능력, 수비 시 위치선정은 수준급이었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굉장히 강인한 선수로 패스 능력이 좋지 않아 자주 실수를 하지만 그 부분에 연연하지 않고 매 순간 집중을 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분에서 좋은 편이 아니라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이 단점이 부각되면서 선수생활 후반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3. 충격적인 이적
캠벨은 유소년 아카데미를 포함해서 약 13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토트넘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당시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올라온 선수가 10년 가깝게 팀의 주장을 맡아 헌신하는 모습을 본 토트넘 팬들은 그를 매우 아꼈고,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캠벨도 소속팀인 토트넘과 팬들에게 각별한 감정이 있을 정도로 애정했는데, 그는 라이벌 팀인 아스날로 역대급으로 충격적인 이적을 하게 됩니다. 당시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을 맡을 정도로 기량이 매우 뛰어났던 캠벨은 그러한 활약에 비해서 급여가 매우 낮은 선수였는데, 더불어서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캠벨은 경기 후 일련의 사건으로 상대팀 클럽 경비원에게 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을 때 토트넘은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캠벨은 토트넘에게 감정적으로 대응을 했고 연장 계약 협상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게대가 팀 성적이나 스쿼드의 수준도 그 당시 월드 클래스였던 캠벨은 만족을 하지 못했고 불화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캠벨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토트넘은 구단 내 최고 급료 제의를 받았는데, 캠벨은 이 제의조차 거절하면서 계약 만료 시점에 점점 다가가게 됐습니다. 이후에 캠벨은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아스날 등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이 캠벨을 위해 집 앞까지 가서 협상을 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고, 결국 캠벨은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같은 리그, 같은 지역의 악연... 토트넘에서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자유계약으로 이적을 해서 토트넘은 돈도 받지 못하고 그를 보내주게 됩니다. 약 13년간 활약한 팀의 상징이기도 한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을 하게 돼서 팬들은 그를 극도로 혐오했고, 캠벨은 한순간에 영웅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적 전에도 캠벨은 "내가 토트넘의 영원한 주장이다."라는 말을 하는 등 팬들을 안심시켰고, "절대로 아스날에 이적하는 일은 없을 거다."라고 팬들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자주 했지만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되면서 역대 최악의 배신자로 낙인찍혔습니다. 토트넘의 팬들은 캠벨의 유니폼을 불태워버리거나, 협박을 하는 등 분노가 극도로 달했고 이 논란은 현재까지도 역대 최악의 이적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