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스날의 천재적인 윙 포워드 '안드레이 아르샤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샤빈은 1981년 5월 29일 소련 레닌그라드(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아르샤빈은 축구 마니아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나이에 축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란 아르샤빈은 스포츠에 푹 빠져 지역 경기장, 길거리에서 축구를 즐겨했습니다. 양발에 능하고 드리블도 수준급이면서 득점력도 갖추고 있는 아르샤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경력
아르샤빈은 1999년에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하게 됩니다. 아르샤빈의 뛰어난 활약과 실력을 바탕으로 2001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로팀에 차출되었습니다. 아르샤빈은 섀도 스트라이커, 측면 공격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러시아 축구에서 가장 유망한 재능중 하나로 빠르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아르샤빈의 이런 꾸준한 활약에 2007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중심에는 아르샤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UEFA컵에서 중주적인 역할을 하여 결승 골을 넣고 팀이 우승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는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인기리그에 비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고 그의 활약을 알아주는 곳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에 띈 순간은 2008 UEFA 유럽 선수권 대회였습니다. 아르샤빈은 능숙한 드리블, 정확한 패스, 경기에 영향력을 미치는 능력으로 팀을 준결승으로 이끄는 등 러시아 대표팀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아르샤빈은 유로 2008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토너먼트에서 뛰어난 선수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유로 2008에서의 활약이 아르샤빈에게 '러시아의 마라도나'라는 칭호를 얻게 하며 이적시장의 주요 선수로 떠오르게 됩니다. FC바르셀로나, 유벤투스 FC 등 명문팀들과 연결이 많이 되었었는데 아르샤빈은 결국 2009년 아스날 FC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1,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클럽 기록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아르샤빈이 아스날에 도착했을 때 그의 창의적인 재능과 골 득점 능력을 팀에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로 팬들을 흥분하게 했습니다. 아르샤빈은 2008-2009 시즌 후반기에 합류해 13경기 중 12경기에 선발로 나가며 6골 5 도움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했습니다. 다음 시즌인 2009-2010 시즌에는 41경기 중 선발로 34경기에 출전해 12골 6 도움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몸관리에 소홀한 편이었는데 30세가 넘어가면 신체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반박이라도 하듯 2010-2011에 10골 17 도움을 기록하며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체력적인 한계로 다음시즌을 기점으로 조커로 전락하게 되었고 2013년 아스날과의 계약을 끝으로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쿠반 크라스노다르, FC카이라트 등 다양한 클럽에서 활동했지만 나이와 체력문제로 2018년에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르샤빈은 국제무대, 클럽무대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경력으로 마감을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의 기술, 창의성, 공헌 등은 러시아 축구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2.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전술적 역할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전술적 역할은 그가 소속되었던 팀에 따라 다양했지만,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로 배치되었습니다. 드리블능력, 시야 및 창의성으로 유명한 아르샤빈은 팀 동료와도 호흡을 잘 맞췄으며 득점 또한 스스로 기회를 창출하며 골을 넣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어려운 위치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미드필더와 공격 사이를 오가며 상대 수비진에게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아르샤빈의 지능과 기술적 능력은 그를 팀의 핵심 선수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아르샤빈은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드리블 기술을 보유하여 좁은 공간을 이동하고 수비수들을 잘 따돌렸는데, 그는 종종 사이드 라인에서 위치해 있었음에도 중앙으로 공을 드리블해서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갖춘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르샤빈은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선수였고 어디에서나 골을 잘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갖기도 했습니다. 또, 아스날에서는 유동적인 움직임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아르샤빈은 스트라이커와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더 많은 기회들을 창출하기도 했습니다. 벵거감독은 아르샤빈은 정통적인 윙어로도 , 돌파를 하는 윙어로도 기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이 것은 아르샤빈이 다재다능함을 전술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르샤빈은 경기장에서 다양한 영역을 활용했고 이러한 모습들은 팀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3.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좌절
아스날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아르샤빈은 여러 번의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재능과 이런 반짝 빛나는 순간에도 불구하고, 아르샤빈은 경기장에서 최고의 활약을 지속적으로 재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르샤빈은 기복이 매우 심한 선수라는 것입니다. 아르샤빈은 2009년 리버풀을 상대로 4골을 넣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런 활약 이후에는 종종 실망스러운 경기력이 장기간 이어졌습니다. 아르샤빈의 기복은 팬들에게 의문감을 불러일으켰고 좌절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 전술적인 요인들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아르샤빈은 다양한 전술에 맞게 많은 전술을 소화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르샤빈을 빛나게 해 주었을 때도 있었지만, 그의 축구 정체성에 불확실함을 초례했습니다. 재능이 뛰어나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선수이기 때문에 선수생활 전반에 걸쳐 상당한 기대와 압박에 직면했습니다. 팬들과 미디어의 기대의 무게는 아르샤빈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능력이 저하되고 좌절감을 느끼면서 자기 관리에 소홀하게 되어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뛸 수 없었습니다. 경기장 밖에서의 문제들이 아르샤빈의 정신적 스트레스의 주된 요소였고 이런 부정적인 영행이 아르샤빈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그의 능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반적으로 아르샤빈의 이러한 좌절은 전술적, 신체적, 정신적, 외부적 요인이 모두 뒤섞이며 발생했습니다. 아르샤빈은 찬란한 성공의 시기를 경험한 반면, 최악의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