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슐리 콜은 1980년 12월 20일 영국 런던 타워햄리츠 스테프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키 176cm에 몸무게 66kg으로 다부진 신체조건을 갖고 있었는데, 전성기 시절 소속 팀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부동의 주전일 정도로 실력이 좋았던 그는 논란의 이적으로 비난을 받았었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애슐리 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애슐리 콜'
애슐리 콜은 1997년에 아스날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해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출중한 실력과 노력으로 1년도 채 안 돼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아스날이 아닌 크리스털 팰리스로 임대를 가면서 경험을 쌓게 됩니다. 그는 14경기를 출전하면서 1골을 기록했는데 어린 나이 치고는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2000년 아스날의 풀백 시우비뉴가 부상을 당하자 그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아스날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시우비뉴가 복귀한 후에도 부동의 왼쪽 풀백을 차지하면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아스날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팬들은 그가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이면서도 황금기를 이끌어준 선수였기 때문에 그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월드 클래스로 자리 잡은 그는 228경기 9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면서 세계 최고의 풀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06년 당시 굉장한 논란을 일으키며 첼시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2007년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시즌 막바지에 경기를 뛸 수 있었는데 FA컵 결승전 그가 출장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후 계속되는 활약으로 4년 재계약을 하게 되었고 2010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2011-2012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하면서 콜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후 다음시즌에는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하면서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2013-2014 시즌에는 노화로 인해 몸상태가 안 좋아졌고 2014년 이탈리아의 로마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이 먹어서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하고 LA 갤럭시, 더비 카운티를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2. 대체 불가 레프트 백
콜은 아스날로 복귀하게 되면서 어린 나이에 줄곧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었는데, 소속팀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황금세대의 일원으로 활약한 적이 있습니다. 소속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 그의 대체자가 없었고 그는 대체 불가 레프트 백이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역대 최고의 레프트 백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공격력과 수비력과 체력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점이 없었고 그중에서도 수비력은 수준이 가장 높았을 정도로 수비를 잘했던 선수였습니다.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잘 읽는 예측 능력에 능했고, 역습을 차단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특히 역대급 반응속도를 기반으로 대인 수비 능력은 그 당시 모든 축구선수를 통틀어 가장 훌륭했던 선수입니다. 거칠면서도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 선수가 누 구던 간에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태클의 스피드와 정확도도 굉장히 뛰어났는데 첼시 시절에는 존 테리, 카르발류 등과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는 등 여러 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주력과 체력은 나무랄 곳 없이 훌륭했으며, 공격과 수비를 오가면서 굉장한 활약을 했습니다. 또한 공격력도 매우 좋아서 오버래핑 타이밍과 주변 선수들과의 호흡도 매우 잘 맞았습니다. 크로스, 컷백 모두 뛰어나서 정말 무결점 수비수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단점이 없는 세계적인 레프트 윙 백이었는데 아스날, 첼시, 잉글랜드에서는 현재까지도 그의 뒤를 이을 대체자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공격과 수비 지역에서 결점이 없는 선수인 데다가 전술 이해도마저 매우 뛰어나니, 역대 최고의 레프트 백이라고 불릴만했습니다. 그는 2000년대에 개인수상만 14번 할 정도로 역사적인 선수임은 틀림없습니다.
3. 논란의 이적
2006년 첼시로의 이적 직전에 그는 아스날에서 굉장한 논란을 만들어냅니다. 아스날과의 주급문제로 불화를 겪었었는데 이 과정에서 첼시와 불법적으로 접촉을 해서 이적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청문회까지 열렸고 청문회를 통해서 불법적으로 접촉한 것이 사실임으로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애슐리 콜은 아스날과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심지어 콜의 자서전에는 아스날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를 본 아스날의 서포터스들은 그에게 매우 실망하게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콜은 아스날 유소년 아카데미 때부터 팬들이 좋아하던 선수였습니다. 아스날에서 자란 그 선수가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주급문제로 갈등이 불거지면서 불법적으로 팀을 배신한 것이었기 때문에 팬들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고, 그가 첼시로 이적한 후 아스날과 경기가 있을 때 팬들은 콜이 공만 잡으면 엄청난 야유를 쏟아내는 등 콜과 팬들의 관계가 매우 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당시 이적문제가 다시 불거졌는데, 무리뉴가 이끌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설이 났습니다. 첼시는 부인했지만, 이 문제도 첼시와 콜이 돈 문제와 팀과 불화를 겪는다고 기자들이 보도한 것입니다. 심지어 기자들은 콜의 이혼문제까지 들먹이면서 보도를 하게 됩니다. 후에 콜은 이러한 집착과 과도한 보도에 질려버린 나머지 스페인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무리뉴의 적극적으로 콜을 원한다는 것도 사실이었고, 이런 문제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안첼로티 감독의 설득으로 그는 잔류를 했고 이적 문제가 일어났던 2010-2011 시즌에 리그 38경기 출전,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줍니다. 전반적으로 그의 이적상황에는 항상 논란이 있었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레프트 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젊은 축구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