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비뉴는 1987년 5월 27일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 교외의 안야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러 아프리카 선수들과 같이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본래 본명은 제르베 야오 쿠아시(Gervais Yao Kouassi)지만 브라질 출신 감독으로부터 지금의 제르비뉴라는 포르투갈어 별명을 받아서 유니폼 이름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1. '제르비뉴'
제르비뉴는 9살의 나이에 코트디부아르에서 가장 유명한 팀이자 황금세대 선수들의 대부분을 배출한 클럽인 ASEC 미모사 유소년 클럽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5년간 경험치를 쌓고 2002년 투레형제가 있는 투모디 FC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 두 시즌을 보낸 뒤 벨기에 리그의 KSK 베베렌으로 이적을 하며 프로데뷔 이후 많은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은 후 2007년 프랑스의 르망 FC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59경기에 출전해 9골을 넣으며 그 재능을 인정받아 2009년에 프랑스의 명문팀 LOSC 릴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릴에서의 활약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는 2010-2011 시즌에 15골 10 도움을 기록하며 득점랭킹 5위를 하였고 팀의 2관왕에도 기여를 하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굉장한 활약을 해냅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아스날은 2011년 제르비뉴를 이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대보다 못한 실력으로 최악의 베스트 11에 뽑히게 됩니다. 2 시즌 동안 45경기 9골이라는 수치로 많은 팬들이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2013년 8월 AS 로마로 이적을 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로마의 에이스로 자리 잡게 됩니다. 당시 모하메드 살라, 에딘 제코와 공격진에서 호흡을 맞추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를 로마로 불러들였던 '뤼디 가르시아'감독이 경질됨에 따라 그의 미래도 불투명 해졌습니다. 이후에는 중국 허베이 화샤 싱푸로 이적을 하고 2년 동안 준수한 활약을 펼칩니다. 그리고 2018년 파르마 칼초 1913으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파르마가 중위권에 입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30경기 11골 3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잔류에 큰 기여를 했고 다음시즌에는 32경기 9골 4 도움을 기록하여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냅니다. 그리고 2021년 트라브존스포르를 거쳐 2022년 아리스 테살로니키 FC로 이적하여 현재까지도 현역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코트디부아르의 황금세대
제르비뉴는 2007년 U-23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으며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로서 처음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2007년 베이징 올림픽 아프리카 예선 말리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같은 해 11월 A대표팀에 소집되었고, 앙골라 전에서 A대표팀에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을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코트디부아르는 국제대회에서 강팀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신체능력으로 프리미어리그를 장악했던 디디에 드로그바, 세계 최고 미드필더의 반열에 오르고 있던 야야 투레, 나이는 좀 있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보여주던 콜로 투레, 코트디부아르 역대 최다 경기를 보유하고 있던 디디에 조코라 그 외에도 살로몬 칼루, 제르비뉴, 셰이크 티오테 등 월드컵 전부터 준결승 전력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대회를 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월드컵 최다 우승팀인 브라질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한조에서 만나게 됩니다. 결국 코트디부아르는 포르투갈과 비기고, 브라질에게 패배, 북한을 이기며 승점을 땄지만,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며 토너먼트에는 진출을 못 하게 됩니다. 4년 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윌프리드 보니가 추가되며 막강한 전력을 보여줬지만 일본전 승리, 콜롬비아전 패배, 그리스에게 극적으로 점수를 지키지 못하며 또 좌절하게 됩니다. 대회 직후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을 하면서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드로그바와 투레형제, 조코라, 제르비뉴 등 주축선수들이 은퇴한 이후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가대표팀의 황금세대 주축이었던 제르비뉴는 코트디부아르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기여한 선수였습니다.
3. 재규어
제르비뉴는 어마어마한 스피드를 자랑함과 동시에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줘서 '재규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입니다. 주 포지션은 윙어였고, 가끔씩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수행하던 선수였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디디에 드로그바는 강력한 몸싸움과 제공권등을 책임지는 신체능력을 대표했고, 제르비뉴는 스피드와 민첩함을 책임지는 신체능력으로 대표됐습니다. 그 정도로 그는 스피드스타였는데, 단순 최고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가속도, 민첩성 등에서도 톱클래스인 데다가 볼컨트롤과 드리블이 모두 좋았습니다. 그가 선호하는 플레이 패턴이 정해져 있는 편이었는데, 순간적인 폭발력과 수비수가 예측하지 못하는 빠른 방향전환을 이용해 수비수를 제치는, 굉장히 단순한 패턴이지만 직관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던 선수입니다. 특히 주 포지션인 왼쪽 윙에서는 이 패턴으로 치고 들어온 다음 오른발로 슛을 자주 시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이런 선수들의 특징은 이기적인 플레이를 많이 하는데, 그는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아니었고, 동료에게 패스를 많이 하는 이타적인 선수였습니다. 그는 리그에서는 반페르시와, 국가대표팀에서는 드로그바와 같이 플레이하며 굉장한 호흡을 보여줬는데 이 두 선수는 이미 최고 반열의 선수였지만, 그들이 득점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제르비뉴가 이타적인 플레이를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재규어라는 별명답게 빠른 움직임을 보였던 그는 스피드와 패싱, 도움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리듬과 탄성, 신체능력이 그의 별명을 '재규어'로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자국에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88경기 23골을 기록했고, 리그에서는 기복이 있었지만 많은 득점을 했던 '재규어' 제르비뉴는 현재도 그의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경력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시점인데요. 국가대표팀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겼던 업적들은 계속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