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 투레는 1981년 3월 19일 코트디부아르의 부아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른 아프리카 축구선수들과 같이 가난한 환경에서 늦게 축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178cm의 작은 키지만 훗날 무패우승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수비수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 라이트 백,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윙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수였습니다. 오늘을 콜로 투레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콜로 투레'
투레는 ASEC 미모사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지만 엄청난 재능으로 감독에 눈에 띈 그는 1999년 ASEC 미모사 프로팀에 명단을 올리는 등 프로 계약은 맺지 않았지만 2000년부터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모든 경기를 소화하는 등 재능을 보여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2002년 결국 아르센 벵거의 눈에 띄어 아스날의 입단테스트에 합격하면서 아스날에 영입하게 됩니다. 당시 아스날의 수비수 중 센터백 1명의 공백이 있었는데 투레가 투입하면서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선수 등록시기가 아니었기에 다음시즌에 데뷔를 했는데 그는 15만 파운드라는 소액에 이적이 되었고 팬들도 그에 대해서 별 기대감이 없었는데 그는 이러한 인식을 바꿔놓으면서 솔 캠벨과 콤비로 아스날의 무패우승에 공헌하게 됩니다. 이후 주장완장까지 차면서 팀의 헌신하는 선수가 되었고 아스날에서 7 시즌 동안 327경기 14골 3 도움을 기록하면서 레전드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아스날에서 활약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가 아스날 구장을 방문하면 그를 외치는 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 2009년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적하자마자 주장을 맡게 되었고 팀이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기여를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팀의 수비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2011년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후에 몸상태가 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전경쟁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2013년 부진을 뒤로하고 리버풀로 이적을 하게 됐는데 나이도 있고, 몸상태도 떨어져서 후보선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예상대로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서 2016년 셀틱으로 이적을 하게 되었고 2017년 은퇴와 동시에 셀틱 코치를 맡게 되어 현재는 감독으로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수비 라인의 중심
아스날은 투레를 이적하기 전에 철의 포백인 딕슨-볼드-아담스-윈터번 라인을 세대교체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벵거 감독은 당시 노쇠화된 이 라인을 콜-키언-캠벨-로렌으로 구성하려고 막 생각하고 있을 찰나에 키언의 노쇠화에 따른 경기력 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당시 투레는 중앙 미드필더나 측면 수비수로 경기를 간간히 출전하고 있었지만 다재다능한 면을 알아본 벵거 감독은 곧 투레를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콜-캠벨-투레-로렌 라인이 구성이 되었는데 2003-2004 시즌에는 본격적으로 주전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의 능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는 리그, 컵 경기를 포합 해서 55경기를 소화했고 부상도 없는 데다가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는 등 아스날의 무패우승에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서 그는 최강의 수비 라인에서 중심 역할을 하면서 팀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후에도 리더십을 바탕으로 라인을 조율하면서 당대 최고의 수비수 급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그는 아스날에 출전하면서 솔 캠밸, 윌리암 갈라스, 요한 주루, 필리페 센데로스 등 여러 중앙 수비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부동의 중앙 수비수로 자리 잡게 되었고 워낙 부상이 없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꾸준하게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아스날에 있으면서 2002-2003 시즌 FA컵 우승, 2003-2004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2004-2005 시즌 FA컵 우승,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2005-2006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과정에서 10경기 연속 무실점, 2006-2007 칼링컵 준우승 등 모든 경기에 나오면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자리를 잡았고 국가대표에서도 부동의 중앙 수비수로 120경기를 뛰면서 국제대회에서도 여러모로 활약을 했습니다.
3. 올라운더 수비수
투레는 180cm가 되지 않는 중앙 수비수 치고는 작은 키를 갖고 있지만 다른 능력은 모두 갖춘 올라운더 수비수였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빠른 스피드와 기동력, 운동 능력은 최상위권이었고, 전진성과 빌드업 능력 그리고 공을 다루는 능력뿐만 아니라 체력과 리더십까지 갖춘 무결점 센터백이라고 불렸습니다. 비슷한 분야의 최고 선수 격인 카를레스 푸욜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미드필더 지역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포지션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단신 수비수들의 한계는 몸싸움이나 제공권이었는데 투레는 운동능력이 워낙 좋아서 몸싸움과 제공권에도 압도적으로 뛰어났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능력이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면 자신의 경기력에도 지장이 갈 정도로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던 투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 전까지 빅클럽에서 주전경쟁을 하면서 경력을 마감할 정도로 그가 갖고 있는 실력 자체는 의심의 여지없이 뛰어났던 선수였습니다. 특히 이 말도 안 되는 운동능력은 형제인 야야 투레와 마찬가지로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었고, 이 운동 능력을 기반으로 어느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고 윙어나 풀백은 물론이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를 했었지만 결정적으로 아스날에서는 중앙 수비수를 맡게 되면서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많았지만 투레는 그중에서도 어느 위치에서 경기를 뛰던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단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그는 리그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굉장히 헌신적이었던 선수로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육각형 수비수였습니다. 이런 그는 역동적인 수비를 많이 보여주면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