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앙리' 프리미어리그의 왕, 프랑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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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앙리' 프리미어리그의 왕, 프랑스의 전설

by rosi7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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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티에리 앙리는 1977년 프랑스 수도 근교인 레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8cm의 키와 83kg의 체중으로 타겟맨에 더 가까운 신체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정교한 오른발 골 결정력과 압도적인 스피드를 보유한 선수였습니다. 아스날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프랑스 국가대표 역대 최다 2위인 선수이고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프리미어리그의 왕이라고 불렸던 앙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티에리 앙리'

앙리는 1983년 CO레줄리 유소년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US 팔레조, ES 비리 샤티용, 클레르퐁텐을 거치면서 굉장히 많은 성장을 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축구를 시작해서인지 남다른 축구 센스와 재능을 보여줬는데, 1993년 그 당시 아르센 벵거감독이 이끄는 프랑스의 명문팀 AS 모나코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면서 1994년 프로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는 이 당시에 엄청난 유망주로 기대를 받고 있었고 1996-1997 시즌 팀이 리그와 컵 두 개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1998년 국가대표팀에 승선해서 월드컵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고 프랑스가 우승을 하는데 기여를 합니다. 모나코에서 141경기 28골 37 도움을 기록한 그는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9년 이탈리아의 명문팀 유벤투스로 입단하게 됩니다. 비교적 거액에 이적한 그는 유벤투스에서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에서 경기를 자주 출전하게 됐는데 감독의 무지함으로 앙리를 윙에 출전시키게 되면서 그는 반 시즌동안 16경기 3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거품논란까지 생기게 됩니다. 이때 유벤투스의 감독은 앙리를 윙으로만 쓰고 팔아버린 게 후회된다며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1999년 앙리는 벵거의 부름에 아스날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앙리는 이곳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게 되는데 375경기 228 득점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무패 우승을 포함해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가장 많은 득점왕을 차지했고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약 8년 동안 전설적인 활약을 한 그는 2007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도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굉장한 활약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9년 몸상태가 많이 떨어지고 신체능력도 떨어지는 등 자리를 잃게 되면서 2010년 미국의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후 2012년 아스날로 단기 임대를 가게 됐는데 중요한 상황에서 결승골을 뽑는 등 왕의 귀환을 알리면서 활약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2014년까지 뉴욕 레드불스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게 되고 현재 감독으로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 프리미어리그의 왕

티에리 앙리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프리미어리그의 왕으로 군림을 했는데 전성기 때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King Henry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전성기 시절 그는 득점능력뿐만 아니라 어시스트 능력도 탁월했기 때문에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앙리 존(Henry zone)'이라고 불리는 골대 오른쪽 공간으로의 오른발 감아 차기는 역사상 최고의 수준으로 손꼽히는 기술로 수많은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부드럽고 정교한 슛으로 침투 후 반박자 빠른 슈팅으로 구석으로 꽂아 넣는 킥이 예술이었습니다. 이런 앙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스피드인데 스피드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특히 힘 안 들이고 공을 앞으로 치고 달리는 모습은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그는 연계능력도 상당히 좋았는데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임에도 아스날에서 베르캄프와 위치도 바꾸면서 가끔은 플레이메이킹 역할을 맡는 등 다재다능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공중볼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188cm라는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어리그 통산 174골 중 헤딩골은 고작 6골밖에 안 될 정도로 비중이 낮았습니다. 그는 중앙에서 타깃형 스트라이커처럼 버텨주기보다는 측면에 빠져있다가 순간적으로 엄청난 스피드를 이용해 돌파하는 유형의 선수였기 때문에 아스날에서의 헤딩골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아스날이 극단적으로 긴 패스를 최소화하고 간결한 패스로 공격 전개를 했다는 것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전성기 시절 프리미어리그의 왕으로 군림했을 때 경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굉장한 선수이고 많은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선수시절 80개가 넘는 개인수상을 했을 정도로 역사적인 선수로 기록됐습니다. 

 

3. 프랑스의 전설

티에리 앙리는 1996년 청소년 대표를 시작으로 청소년선수권 대회 우승, 1997년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면서 프랑스 풋볼에서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상과 프랑스 축구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1997년 본격적으로 성인 대표팀에 차출되었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첫 경기만에 골을 기록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면서 2 경기만에 3골을 기록하면서 어린 나이 답지 않은 골들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16강부터는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출전을 했지만 결국 팀 내 최다 득점자로 월드컵 우승까지 하며 첫 월드컵에서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놀라운 건 바로 다음 대회인 유로 2000에서도 폭발적인 스피드로 3골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올려놓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팀에서만 출전한 대회를 모두 우승으로 이끈 그는 역사적인 선수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다음 대회인 2002년 한국, 일본 월드컵 대회 시작 전 유력한 득점왕 후보 중 1명으로 꼽히는 데다가 그의 전성기가 시작될 쯤이라 프랑스의 우승을 점치는 언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부진을 하면서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 아픔을 잊고 2003년 프랑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4골 2 도움으로 우승을 했고 대회 골든볼과 득점왕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맹활약을 했습니다. 소속팀 아스날에서의 활약과 국제대회의 활약으로 그는 2003년 발롱도르와 FIFA올해의 선수 모두 2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유로 2004에서도 맹활약을 했지만 팀의 노쇠화로 8강에서 탈락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2골 토너먼트에서는 우승후보 브라질을 꺾는 굉장한 골이 나오면서 월드컵 베스트에 뽑히는 등 활약했지만 팀은 준우승을 하면서 우승을 놓치게 됩니다. 이후에도 국가대표팀으로 뛰면서 굉장한 활약을 했고 123경기 51골로 프랑스 역대 득점 2위를 차지하는 등 전설적인 선수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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